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난의 변 (문단 편집) === 삭번정책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35px-Huang_Zicheng.png|width=170]] || || '''[[황자징]]'''(黃子澄) || 건문제는 즉위한 후 황자징에게 >'''"경은 과거 동각문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시오?"''' 라고 했고, 황자징은 >'''"감히 잊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리하여 동성 번왕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삭번정책'''(削藩政策)이 실시되었는데 여기서 황자징과 제태의 의견이 엇갈렸다.[* 보면 알겠지만 이후로도 황자징과 제태의 의견은 계속 엇갈렸고, 건문제는 주로 황자징의 의견을 따랐는데 문제는 그나마도 전부 따르지 않아 끝내 전부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제태는 기왕 삭번정책을 하려면 당대 최강의 번왕인 연나라의 주체부터 건드려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황자징은 우선 다른 번왕들부터 제압해야 낫다고 주장했다. 결국 황자징의 의견대로 다른 제후들부터 공격하기로 했는데 첫 번째 목표는 주왕(周王) '''주숙'''(朱鏞)이었다. 주숙이 연왕 주체의 모제(母弟)인 만큼 일단 공격하면 주체를 옥죌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이 전개되는 시간 순서를 보면, 1398년 5월에 홍무제 주원장이 붕어했고, 6월에 황자징과 제태가 등용되었으며 주왕 주숙은 8월에 변을 당한다. 엄청난 일사천리인데 이는 건문제가 즉위하기 이전부터 삭번정책을 시행하는 자들이 계획했기 때문이리라. 조국공(曹國公) '''[[이경륭]]'''(李景隆)이 국경 경비라는 명목으로 병사를 이끌고 [[카이펑|개봉부]](開封府)로 갑자기 나타나더니 왕궁을 포위한 채 불문곡직하고 주왕 주숙을 체포했다. 그리고 주왕 세력을 체포해 심문하는 와중에 일이 커지면서 다른 왕부들에까지 미쳤다. 주왕 주숙과 민왕 '''주편'''(朱楩)은 서인으로 강등되었고, 대왕 '''주계'''(朱桂)는 [[대동]](大同)에 유폐됐으며 제왕 '''주부'''(朱榑)는 감금되었다. 상왕 '''주백'''(朱柏)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절망하여 분신 자살했다. 이때 연왕 주체는 황제에게 주왕 주숙의 죄를 해명하는 글을 대신 작성해 보냈다. 그리고 '''스스로 미친 척'''하면서 칭병불출했는데 성격이 어질었던 건문제는 그 글을 읽고서 마음이 흔들려 '''"그냥 다 그만두자."'''라고 지시했다. 황자징과 제태는 서로 이야기했지만 '''"이제 와서 멈추기는 늦었다."'''고 결론내리고서 연왕이 칭병불출하는 사이에 습격하라고 건문제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건문제는 >'''"짐이 즉위한 지 얼마되지 않아 여러 왕을 연이어 축출했는데 또 연을 삭탈하면, 짐이 천하에 무어라 해명하겠소?"''' 라는 이유로 머뭇거렸다. 황자징이 '선수필승'의 이야기를 꺼내자 건문제는 >'''"연왕은 용병술에 능한데 어떻게 금방 제압하는가?"''' 라고 핑계를 대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건문제의 우유부단한 태도와 별개로, 황자징은 도독 '''송충'''(宋忠)에게 명령해 연변(緣邊)에 주둔한 관군을 징발하여 개평(開平)에 주둔케 하고, 연부(燕府, 연왕부)를 호위하는 군사 중 정예로 예속된 충성스러운 군사를 선발해 휘하에 두게 했으며, 연왕 주체의 호위인 호기지위(胡騎指揮) '''관동'''(關童)을 수도 남경으로 소환해 주체의 세력을 점차 약화시켰다. 또한 북평(北平, 베이징), 영청(永清)의 좌위·우위 군관을 징발해 [[창덕]](彰德)과 [[순덕]](順德)에 나누어 주둔하게 했으며, 도독 '''서개'''(徐凱)는 임청(臨清)에서 군대를 조련하고, '''경환'''(耿瓛)은 [[산해관]](山海關)에서 군대를 훈련하게 하면서 연왕 주체의 세력권인 북평을 감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